쌍용자동차 희생자추모 및 해고자복직 범국민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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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1-12 15:39
<의자놀이>를 읽고
 글쓴이 : 물위에뜬달
조회 : 1,496  
<의자놀이>를 읽고 공지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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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의 연대가 의자놀이를 중단시킨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이용당해주는 99%가 있기에 영원히 영화로울 것이라 생각한다. 배고픈 자들은 결코 단결하는 법이 없으니까 본문 중에서 -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글을 쓸 자격이나 있나?’ 스스로 부끄러워했다. 작가적 양심에서 이 책이 고생스럽게 만들어졌으니 나도 무딘 글이나마 그 노력의 만분의 일이라도 거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 시절 아이들과 재미있게 한 의자놀이가 사실은 뺏고 빼앗기는 살벌한 경쟁사회를 은유하는 줄 몰랐었다. 탈락한 학생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음은 당연하다. “1%의 이익을 위해 99%끼리 싸움을 붙이는 잔혹한 게임.” “쌍용자동차 관리자들은 노동자들에게 노동자 수의 반 밖에 안 되는 의자를 놓고 산자와 죽은 자를 가리는 의자놀이를 했다.” 그들은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정리 해고를 했고, 정리해고에는 어떤 상식적인 기준보다 단지 해고할 숫자만 필요했다.
 
쌍용차 사태를 간략하면, 흑자를 내는 멀쩡하던 회사를 민영화 만능론을 신봉하는 정부 관료들이 상하이 차(중국자본)에게 넘기면서 시작된다. 상하이 차는 국내 여론과 노조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거액의 투자를 약속 한다. 그러나 투자 약속을 지키지 않고 기술만 유출해간다. 투자가 없자 회사는 적자가 심화되어 2,600여명을 정리 해고한다. 조합원들은 이에 77일간 옥쇄 파업을 벌이며 싸웠고, 경찰은 1980년 광주 학살에 버금가는 폭력으로 진압한다. 상하이차는 목적을 달성한 후 안진 회계법인의 회계조작을 통해 빚덩이 회사로 만들고 법정 관리를 요청한다. 이 싸움의 과정에서 노동자 22명이 사망하고 국가 권력은 먹튀를 방조했으며 마지막 보루인 법원마저 기술 유출에 무죄를 선고한다. 회사는 다시 마힌드라사(인도자본)에 넘어간다. 쫓겨난 노동자들은 지금도 대한문 앞에서 천막도 없이 모호한 상대를 대상으로 농성하고 있는 중이다.
 
키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 절망이라고 했다. 자본주의에서 죽음에 이르는 병은 해고이다. 아니 이것은 약한 표현이다. 자본주의에서 해고는 살인이다. 특히 아무런 사회안전망이 갖춰져 있지 않은 약탈적 자본주의 천국인 한국은 더욱 그렇다. 이 말은 99%에겐 지옥이라는 뜻이다. 한국이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인데, 3년간 죽은 22명이란 숫자는 거의 열배에 이르는 자살률이다. 이것은 조현오가 모범 사례라고 지껄였던 것과 더불어 치명적인 지옥증명의 증거가 될 것이다. 작가는 22명의 노동자가 죽어나가도 우리 사회가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며 실제로는 사망자가 발생하지도 않은 신종 플루 때문에 전국의 학교가 휴교를 불사했고, 국가는 무료 약품을 공급한 사례로 일침을 놓는다. 나는 죽은 숫자도 엄청나지만 앞으로도 이런 일이 지속 가능하게 하는 약탈적 사회구조를 바꾸어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시대가 온다면 촛불이 횃불로 변한다면... 그런데 조현오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보다 계급이 너무 높지 않은가!
맨 정신으로 살 수 없는 시대, 그래서 현재를 생까지 않으면 견뎌내기 어려운 시대, 타인의 고통에 침묵과 외면으로 이루어진 삶, 어둡고 불편한 진실에 대면하는 두려움과 부채감에 괴로운 삶, 작가는 이런 힘든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99%가 연대해 나가야 한다고 한다. 각개전투하지 말고 함께 살자고 한다. 쌍용차 노조를 최전선에서 진압하던 전투경찰이 전경으로 근무할 때에는 정말 쌍용차 노동자들이 폭도이고 증오스러웠는데, 제대 후 쌍용차 사건에 대해 좀 더 알아보니 노동자들에게 정말 잘못했다며 보내온 사과 소식을 들으면서 섣부른 희망이 아닌 작지만 진정한 희망의 빛을 보았다. 그러니 노동자들이여! 더 이상 죽지 마시라.
 
지금 세계가 칠흑처럼 어둡고
길 잃은 희망들이 숨이 죽어가도
단지 언뜻 비추는 불빛 하나만 살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토록 강력하고 집요한 악의 정신이 지배해도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희미한 등불로 서 있는 사람
 
어디를 둘러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무력할지라도 끝끝내 꺾어지지 않는 최후의 사람
최후의 한 사람은 최초의 한 사람이기에
희망은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박노해 시집에서 일부 발췌
 
추신 : 공지영작가와 하종강교수, 이선옥작가 사이에 글의 인용 문제를 두고 생긴 문제는 먼저 공작가가 쿨하게 사과하는 선에서 아름답게 매듭지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공작가가 말한 '모두 함께 사는 것이며 99%가 연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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