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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6-17 17:31
사랑의 혁명에 대해 말해드리죠
 글쓴이 : 추모위
조회 : 1,866  
사랑의 혁명에 대해 말해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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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시인
 
 
그날 그 담장을 넘기 직전
사실 나는 두려웠습니다.
담장 너머 저편 세상을 알 수 없었으므로
넘어야 하는가, 넘을 수 있을 것인가, 저 높은 담을
넘은 다음에는 무엇이 있을 것인가
 
애초에 우리가 원했던 것처럼
당신들이 문을 열어주었다면
우리는 문을 통해 들어갔겠죠. 문으로 걸어 들어가
우리가 그리워한 사람을 만나 손을 흔들고
반드시 살아서 내려오라, 말해주고
우리는 돌아갔을 거예요.
 
그런데 왜인가요
어려운 일을 당하는 힘없는 사람을 지켜줘야 할 경찰이
죽음 끝으로 내몰린 이웃의 고통에 연대하러 온 우리를
사방에서 옥죄어 꼼짝 못하게 하더군요.
힘없는 노동자를 지키기는커녕
수많은 노동자를 죽으라고 내모는 단 한 명 자본가를 위해
새까맣게 동원되어 군홧발을 저벅거리더군요.
시민들을 향해 몽둥이를 치켜들더군요.
눈앞의 공권력이 두려운 것은 현실이었지만,
두려움보다 뜨거운 사랑의 힘으로 우리의 심장은 뛰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
나팔꽃 넝쿨이 담을 타고 번지며 부우부우 나팔을 불듯이
순식간에 담장을 뒤덮으며 올망졸망 꽃들이 피어났습니다.
 
그것은 사랑이 만든 기적!
자기의 이익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을 위해
자기의 시간과 돈과 몸과 마음을 쓰며
생명의 빛으로 함께 걸어가려는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마음의 무늬들이
거기서 피어났습니다.
 
 
담장 바깥에서 두려워하던 나는
담장 안에서 새로워졌습니다.
담장을 넘는 1분 사이에 나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것은 온전한 사랑의 혁명,
사랑의 힘으로 담장 안의 내 몸은
조금 전까지의 몸과는 다른 몸이 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몸을 당신들은 죄를 지은 몸이라고 하는군요.
이웃의 고통에 연대하는 사람다움을 결코 누려보지 못한 가엾은 당신들,
죽음에 내몰린 사람을 살려 함께 보듬고자 한 마음이
죄가 되는 이 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우리는 그렇게 처음 만났고, 2, 3, 4, 5……
우리가 그토록 살려내고 싶었던 그 사람은 살아 내려와
더 많은 생명의 기쁨과 노동의 기쁨을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돌아다닙니다.
그 사람을 바라보며 희망을 얻었던 많은 사람들이
그 기쁨의 힘에 전염되어 깔깔깔 웃으며 노래하고 춤춥니다.
고난이 깊어도 절망이 끝없어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힘을 서로에게서 얻으면서……
이 희망 없는 침울한 대한민국 서민의 삶에 빛과 웃음을 뿌려준
희망버스, 그것은 사랑의 혁명.
희망버스의 탑승자들, 그들은 벌금이 아니라 상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
 
사랑의 기쁨에 대해 말해 드리죠.
다시 1년 전 그날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담장을 넘을 겁니다.
검사는 물었죠.
=조선소 안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기도를 했습니다.
=무슨 기도를 했습니까.
-뻔뻔하고 포악한 자본이 죽으라고 내팽개친 사람들을 구하겠다고,
목숨을 걸고 공중감옥으로 걸어간 한 여자가
온전히 따뜻한 목숨으로 우리의 품으로 돌아오길 기도했습니다.
 
검사는 한숨을 내쉬고 다시 물었죠.
=또 무엇을 했습니까.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녀가 350미터 공중에서 전해오는 편지를 들으며 울었습니다.
-울고 있는 서로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주며,
우리 함께해서 참 좋다고 얼싸안았습니다.
-함께 끝까지 기억하고 노래하자고 약속했습니다.
=그게 다입니까?
-종이비행기를 접었습니다.
-크레인에 오색 바람개비를 매달아주었습니다.
-해고노동자의 아내와 아이들이 정성들여 준비한 새 양말을 받고
또 한바탕 울었습니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자고, 함께 살자고,
더불어 함께 살아야 좋은 세상 아니겠냐고.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앞길 막막한 해고노동자들과
더운 국물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 또 있군요. 크레인을 올려다보며 사랑합니다!” 외쳤습니다. 목이 터져라 외쳤습니다.
 
이번엔 내가 검사에게 물었습니다.
-자본가에게는 자본가의 윤리가 있어야 합니다.
기업은 노동자의 노동으로 유지됩니다.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윤리의식은 자본가의 의무입니다.
이 모든 책무를 까맣게 망각하고 오직 자신들의 금고만 배불리기 위해
생목숨들을 죽으라고 내모는 이런 자본, 이런 악랄한 자본의 죄에 대해서
왜 당신들은 묻지 않습니까.
 
검사가 말했습니다.
-한진 자본의 비윤리성과 악덕함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법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법을 어겼습니다.
남의 재산인 담장을 넘었고
도로교통법을 어겼고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을 어겼습니다.
 
나는 검사가 불쌍했습니다.
자신의 말이 가진 민망한 어패를 그도 알고 있을 것이므로.
약자를, 민중을, 시민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법임을,
권력과 힘의 무도함으로부터 부당하고 불의하게 내쳐지는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것이 법정신임을
법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므로
 
그런데도 검사는 똑같은 말만 되풀이 합니다.
사람을 위해 생겨났건만 사람을 이해할 의지도 용기도 없는
피도 눈물도 심장도 없는 메마른 죽은 법, 기계보다 못한 법이 슬펐습니다.
악법은 고쳐져야 하는 법이지요.
메마른 죽은 법도 현명한 법관을 만나면 더러 생명을 얻기도 합니다.
우리는 생명의 소중함과 사랑의 기쁨을 아는 현명한 법관을 기다렸으나……
 
 
당신들은 우리를 유죄라 합니다.
깔깔깔 웃으면서 우리는 이 선고를 당신들에게 돌려드립니다.
당신들은 유죄입니다.
법의 이름으로 지켜야할 사회적 약자들을 지키지 못한 죄!
수많은 사람들을 절망과 죽음으로 몰아가는 난폭한 자본의 광기를 방조한 죄!
자본의 광기가 저지르는 끔찍한 폭력을 적극 방어하고 정당화한 죄!
방조함으로써 자본의 폭력을 고무하고 조장한 죄!
진실로 무법한 자들이 누구인지
정말로 모르신다면,
그것은 당신들이 인간에 대한 예의에 무지한 때문.
법의 존재 이유에 무지한 때문.
사랑의 기쁨에 대해 무지한 때문.
당신들의 무지가 가엾습니다만,
스스로 변화하려는 용기가 당신들을 변화시키길 기도하겠습니다.
 
안타까운 죽은 법이여 기억하시길,
온몸으로 아팠던 사람들이 온몸으로 써온 생명과 사랑의 역사,
그것이 바로 이 땅 민주주의의 역사!
역사와 양심과 정의는
죽은 법때문에 값싸게 후퇴하지 않습니다.
 
 
<  6.16 행사에서 집체시로 낭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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