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희생자추모 및 해고자복직 범국민대책위원회
 
작성일 : 12-06-09 23:26
[참세상]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글쓴이 : 추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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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기고] 희망이라는 작은 발걸음, 희망행진 ‘함께 걷자’

고동민(쌍용차 해고자) 2012.06.08 11:47
 
사실 두려움과 암담함이 앞섰다
모든 게 끝났었다. 노사합의를 한 마당에 꼭 이런 미친 짓을 해야 하는지 의문도 가졌었다. 준비도 부족했다. 떠나기 나흘 전 갑자기 옆 동산에 소풍 가자는 이야기처럼 천리 길을 걷자는 말에 도통 무슨 생각인지 짜증도 났었다. 준비가 부족한 만큼 불안했고, 불안한 만큼 준비를 해나갔다. 그러나 불안함과 비례하는 무기력은 더 견디기 힘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부산역까지 단 9일 만에 400km가 넘는 천 리길을 걸어야만 하는 신세가 됐다. 천리 길의 목표는 하나. 전국 각지의 희망버스 185대로 외로이 185일을 버티는 김 진숙 지도위원을 만나고 한진중공업 해고자들을 응원하자는 것이었다.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린가. 185대라니.

 
날은 더웠다, 가만히 있어도 온몸에 땀구멍이 열리는 날씨였다
새벽 다섯 시에 기상, 다섯 시 반에 출발, 세 시간 걷고 식사, 잠깐 휴식 후 다시 세 시간 걷고 식사, 살갗이 데일정도의 폭염을 피해 다리 밑, 식당 한켠 잠깐 눈이라도 감을라 치면 다시 출발, 또다시 세 시간 걷고 식사. 저녁밥을 먹으면 이제 고만 걸어도 되는 것 아니냐는 악다구니가 목구멍까지 솟구쳐 올랐었다. ‘주변에 그냥 숙소를 잡으라구!’ 그렇게 툭 튀어나온 입으로, 후들거리는 다리로 또 다시 두어 시간을 걸어 어둑해지다 못해 캄캄해질 때면 비로써 뒤통수를 바닥에 대어 볼 수 있었다. 사실 노곤 노곤한 몸을 바닥에 대는 평안함보다는, 다음날 새벽 또 다시 걸어야하나 하는 고통스런 생각에 잠을 설 칠 정도였다.
[출처: playman74]

부상자는 속출했다. 근육이 놀랜 사람, 사타구니가 쓸려 한걸음 뗄 때마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사람, 발목이, 허리가, 어깨가 남의 것이 된 양 마비가 오곤 했다. 쉬는 시간마다 파스를 뿌리고 붙였다. 발바닥이 갈라지고 진물이 났었다. 그래도 다음 날 새벽에 걸었고 또 오밤중이 되어서까지 걸었었다. 걷는 게 지상 최대의 과제였다.
‘잘 들어, 걸을 때는 시선을 멀리보고 몸에 힘을 빼고 걸어. 그래야 덜 힘들어’ 별 소용도 없을 조언들을 들어가며 50km씩, 어떤 날은 60km씩 부산을 향해 추풍령을 넘고 김해평야를 뛰다시피 걸었다.
참 모질게도 몸은 고달팠지만 마음은 참 편안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는 용역들의 크레인 침탈소식에도, 색깔론까지 펼쳐대며 절망버스라 보수언론에서 떠들어대도, 180여일 넘게 사투를 펼치는 그이에게 가는 길이 참 마음만은 편했다. 그렇게 고행이라도 하는 게 얼마나 마음 편안 일인지 몰랐다.
또 함께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응원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발레오공조코리아 해고자, 철도 해고자, 사회단체, 노동단체, 진보정당, 교수, 연구원, 학생, 시민 등 다양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정리해고를 철회하라며 발걸음을 맞추고, 함께 노래를 불러댔다. 서로 갈라진 발바닥에 얼음을 대어주고, 어깨를 두드렸다. 입에 넣을게 생기면 먼저 상대방 입에 넣어주기 바빴다.
그렇게 9일 밤낮을 걸어 부산에 도착했다. 그 날은 비가 정말 억수처럼 내렸었다.
“얼마나 아픈지 아니까 여기까지 온 거다. 이대로라면 이들도 우리처럼 죽음 앞에 떨게 된다. 우리의 역할은 부산역에 도착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걸로 만족하자. 설사 부산역에 모인 희망버스가 185대가 되지 않더라도 우리가 최선을 다한 것에 만족하자. 우리가 마중물이 된 것에 감사하자.”
하늘에 구멍 난 것 마냥 쏟아지는 비 내리는 부산역에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자전거를 타고, 누군가는 열차를 타고, 누군가는 차를 몰고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버스들이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고, 이내 희망을 품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부산역을 메웠다. 우리는 감격했다.
우리는 우리에게 오는 것 마냥 기뻐했다. 우리는 우리를 얼싸안고, 우리는 우리에게 희망을 전했다. 해고는 살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가득한 희망의 광장에서 함께 해방춤을 추었다. 그렇게 2011년 7월 9일 희망버스는 185대를 넘었다. 더불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우리 스스로의 무기력함과 타협도 넘었다. 그렇게 사람이 모여 타협하지 않고, 복종하지 않고, 역사가 되고, 진실이 되고, 희망이 되고, 그리고 우리가 되었다.
[출처: playman74]

그로부터 1년이 다 되어간다
희망버스에 대한 평가도 제 각각인 것처럼, 그 희망을 품었던 사람들도 제 각각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희망버스 이후로 희망을 기다리는 이들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 널려있다.
정리해고는 부당하다며 싸우는 8년의 코오롱, 두 번의 해고를 겪는 6년의 콜트콜텍, 1600일 넘게 싸우는 재능, 밤에 잠 좀 자자고 이야기했던 게 죄가 된 유성,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아직 정규직이 되지 못한 현대차 비정규직, 조합원 탈퇴 안한다고 욕을 들어야만 했던 포레시아, 용역 깡패와 맞서 싸우다 해고 된 3M, 시그네틱스, 파카한일유압, 동서공업, 풍산, K2 등 셀 수 없는 많은 노동자들이 조작된 경영상의 이유로 내 몰려 싸우고 있다.
또한 희망을 품고 응원하고, 위로하기위해 내달렸던 많은 평범한 이들에 대한 사법탄압이, 벌금폭탄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에게 희망이란 없는 것일까. 정말 사람을 물건처럼 취급하고, 쓰다 버리는 폐기물처럼 대하는 이 사회에 희망은 없는 걸까? 절망의 사회에 작은 동심원을 그리며 희망의 정거장을 세웠던 이들에 대한 응원은 없는 것일까?

 
다시 한번 희망으로
다시 한 번 희망으로 사람이 모여 역사가 되고, 진실이 되는 날을 기대한다.
다시 한 번 희망의 버스가 원래 품었던 마음처럼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우리 모두의 바램이 되기를 기도한다.
다시 한 번 타협하지 않고 복종하지 않는 우리 스스로가, 살아있는 권력임을 굳게 믿기를 기원한다.
다시 한 번 그 기대와 기도와 기원으로 우리가 되어야한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6월 16일 토요일 오후 한시, 그 기대와 기도와 기원을 품은 우리가 여의도공원에 모이길 기대한다. 그곳에서 끼니를 굶고 파업을 사수하고 있는 언론노동자들을,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을, 그리고 22명의 죽음을 딛고 마지막 싸움인양 결의를 한 쌍용차 해고자와 그의 가족들을, 아이들을 응원하기를 또한 기대한다.

우리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모였던 것처럼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걷기를 기도한다. 더 이상의 죽음을 막자는 간곡한 걸음이기를, 그러함에도 즐겁고 유쾌한 걸음이기를 또한 기원한다. 함께 걷는 것만으로 우리가 다른 세상을 꿈꾸고 있음을 스스로에게 확신 할 수 있는 걸음이기를, 발걸음 하나하나가 모여 다시 다른 정거장으로 향하는 우리 모두의 희망이기를, 누구에게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싸우는 주체임을 확인하는 걸음이었으면 좋겠다.

세상을 바꾸는 작은 발걸음의 큰 역사였으면 좋겠다.

누구에게는 일자리로,
누구에게는 신념으로,
누구에게는 일상으로,
누구에게는 삶으로,
누구에게는 벅찬 꿈으로 내딛는
우리 모두의 걸음이었으면 좋겠다. 우리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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